선조 대신 왜군과 싸운 광해, 암살 위협 시달렸다고?

Posted by benant
2017. 5. 29. 05:21 카테고리 없음
[역사학자들과 함께 보는 영화 '대립군' 속 사실과 허구]

1년 5개월 동안 分朝 이끌며 의병 모집하고 민심 수습 나서
전쟁 중에도 독서 즐긴 광해군… 실제로 전투 참여한 기록은 없어




한명기 교수, 윤용출 교수.
"오늘부터는 세자가 국사(國事)를 임시로 다스려 관직의 임명이나 상벌 같은 일을 모두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대신들에게 이르라."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그해 6월 평안도 영변에 머물던 선조(宣祖)는 조정을 둘로 나누는 분조(分朝)를 단행했다. 왕세자인 광해군에게 '임시 정부'를 맡기고 인사권과 상벌권을 넘긴 셈이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대립군(代立軍·감독 정윤철)'은 분조를 이끄는 왕세자 광해군이 남의 군역(軍役)을 대신 치르는 '대립군'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내용의 사극(史劇)이다.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여진구가 광해군, 이정재가 대립군 리더인 '토우' 역할을 맡아 극장가 화제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러운 처지에 놓인 자들이 서로 의지해서 절체절명의 위기와 맞선다는 설정엔 감독 특유의 따스한 시선이 깃들어 있다. 암울한 시대상을 담고 있지만 훈훈한 온기(溫氣)가 감돈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의 경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광해군'(역사비평사)의 저자인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와 조선 사회경제사 연구자인 윤용출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를 통해 궁금증을 정리했다.

①굳이 分朝할 필요가 있었을까?

"임진왜란 당시 급박한 전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 뒤 거침없이 북상했다. 4월 29일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한 다음 날 새벽 선조는 경복궁을 나와 피란길에 올랐다. 선조는 최악의 경우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들어가 명나라에 의탁하고, 광해군이 분조를 이끌고 전쟁을 수행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국왕의 권한이 분할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프로덕션 영화‘대립군’에서‘광해군’(여진구·왼쪽)과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는 대립군의 리더인‘토우’(이정재)는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서로 의지하게 된다. /폭스 인터내셔널
②광해군의 활약은?

"1592년 6월부터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고 이듬해 11월까지 1년 5개월간 평안도와 함경도, 황해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의병을 모집하고 민심 수습에 나섰다. 광해군은 의병장 김천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