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인터뷰]이하늬가 말하는 #'역적' #장녹수 #예인

Posted by benant
2017. 6. 2. 10:33 카테고리 없음


사진=서보형 기자
[헤럴드POP=노윤정 기자] “어떤 건 답을 잘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건 못 미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작품을 끝낸 것 같아요”

대중에게 익숙한 역사 속 실존 인물 장녹수. 많은 배우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렸던 장녹수라는 인물이 배우 이하늬를 만났다. 이하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애정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MBC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 속 장녹수는 매혹적이면서 처절했고, 그러면서도 기품 있었다.

이하늬는 ‘역적’을 마친 소감을 이야기하며 “선물 같은 씬들이 많이 남아서 감사한 마음이 커요”라고 밝혔다. 씨실과 날실이 엮이듯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 구성과 감각적으로 이야기를 화면에 구현해낸 연출, 캐릭터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배우들의 호연, 이 삼박자를 모두 갖춘 ‘역적’은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역적’은 이하늬의 표현처럼 ‘선물 같이’ 때로는 통쾌함을, 때로는 달달함을, 때로는 절절함을 전하는 명장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중 이하늬는 장녹수로서 기존 작품들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예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상적인 장면들을 남겼다.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예인 장녹수가 가지고 있는 걸 정말 잘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국악계에) 몸담았었기도 했고, 제대로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기회가 와서 정말 사력을 다해서 한 것 같아요”라고 작품에 임한 자세를 설명했다. 실제로 이하늬는 촬영 시작 전부터 장녹수가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게 될지 작가와 회의를 해가며 열성으로 준비했다. 그 결과, ‘역적’이라는 작품에 또 다른 매력을 더한 아름다운 장면들이 다수 완성됐다.

“저에게 선물 같은 씬이라고 하면, 참 많아요. 승무 씬도 있고 장구춤 씬도 있고 흥타령도 있어요. 사실 흥타령의 경우, 감독님과 처음 미팅했을 때 녹수의 일기에 대해 쭉 이야기하는데 마지막에 돌을 맞아 죽었다는 사실이 확 다가오더라고요. 누군가를 돌로 죽인다는 건, 지금은 없는 정서잖아요. 그런 점이 사극의 매력인 것 같아요. 현대극에서 갖지 않는 깊고 진한 정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할 때 녹수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흥타령을 한 소절 불렀거든요. 그게 감독님 마음을 쳤나 봐요. 그걸 마지막 장면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했던 게 실제가 됐어요. 또, 승무도 제가 아끼고 아꼈던 거였어요. 녹수를 알아보는 연산(김지석 분)을 만났을 때, 연산이 녹수를 알아본 결정적인 계기가 제가 춤을 춘 장면이었거든요. 작가님이 춤을 지정해주지 않으시고, 어떤 걸 하고 싶고 어떤 게 어울릴지 함께 계속 이야기를 했어요. 진짜 아티스트인 녹수를 진짜인 연산이 바라봤을 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것, 깊은 정서가 배어있는 정수의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정말 많이 고민하다가 정한 것이 승무였어요. 드라마하면서 제 딴에는 보물 같은 것들을 많이 풀었는데, 승무도 나중에 영화를 하거나 공연을 만들게 되면 쓰려고 했던 것 중 하나예요. 그걸 풀었는데 너무 잘 찍어주셨고 편집도 기가 막히게 예쁘게 해주셔서, 두고두고 봐도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사진=서보형 기자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빠듯한 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따로 시간을 할애해 연습을 거듭해야 했다. 뿐만 아니다. 사극 한 작품을 하고 나면 당분간은 사극 출연 생각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배우들이 있을 정도로 사극 촬영은 고되기 마련이다. 지방 촬영도 많고, 익숙지 않은 의상 역시 현대극 촬영 때보다 좀 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극 중 가채를 써야 했던 이하늬는 “나중에는 목이 아프다 못해 요추까지 통증이 오더라고요.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매일 먹어야 할 정도가 됐었어요”라고 고백했다. 또한 이하늬는 이전에도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통해 사극 촬영을 한 경험이 있는 바, 당시를 회상하며 “금관 때문에 머리가 엄청 빠졌어요. 그거 회복하는 데 6~8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밖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애로사항들이 많았을 터. 특히 이하늬는 ‘역적’을 통해서 ‘비터 스위트’(Bitter Sweet)하다는 말을 몸으로 느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데도 사극을 찾게 만드는 사극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극이 주는 깊은 정서들, 이제는 희미해진 정서들이 있어요. 충성, 정(情)처럼 아주 한국적이고 깊은 정서인데 이제는 많이 희미해진 정서에 대한 그리움도 있고, 돌에 맞아 죽는 것처럼 현대극이 갖지 않는 극한 상황들도 등장하고요. 그 상황에서의 인물들 반응도 지금과는 달라요. 그런 면에서 사극이 매력 있어요. 지금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싶은 마음인데, 작품이 매력 있고 캐릭터가 매력 있으면 또 사극을 할 것 같아요. 말려주세요”(웃음)

“제가 연산과 마지막 연희를 하고 끌려 나가는 씬이 있어요. 그때 연산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나도 임금의 여자답게 죽겠다’는 이야기를 한 뒤 마지막 절을 하는데, 그 슬픔이 주체가 안 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예 대성통곡을 세 번 정도 했어요. 그날 메이크업을 지우는데 실핏줄이 다 터진 거예요. 감정도 힘들고 극한 상황이어서 진짜 힘들게 그 씬을 찍었지만, 배우로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쏟아내서 연기한다는 그 쾌감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이하늬는 ‘희대의 요부’, ‘조선시대 3대 요부’라고 일컬어지는 장녹수로 분해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남아 있는 사료가 많지 않기에 왜곡 아닌 왜곡이 있을 수도 있고, 때문에 사료에 기록된 ‘사실’일지라도 그 인물에 빙의해 공감하고 타당성을 찾아가려 했다.

“장녹수가 자신의 치맛단을 밟은 사람을 초주검에 이르게 했다는 건 실제 있는 이야기예요. ‘역적’에도 장녹수가 자신의 치맛단을 밟은 흥청을 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가 만약 녹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이걸 찾아야 하는 거예요. 녹수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추적하는 거죠.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녹수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조명한 게 ‘역적’의 녹수인 것 같아요. 공연에 올라가는 자체가 저한테는 성역이에요. 그리고 무대 의상 자체가 성스러운 복장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치맛단을 밟혀서 넘어지고 헝클어졌을 때 상대를 벌하는 건 복수가 아니라 옳지 않은 행동에 대한 반응인 거예요”

“한 친구가 와서 녹수에게 ‘너는 장악원의 수치’라는 이야기를 해요. 이게 뺨까지 때릴 일인가,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손으로 장구를 치더라고요. 그 친구는 동선에 방해되니까 무의식적으로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악기를 손으로 굴린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에요. 이런 점들을 디테일하게 쌓아 가면 할 수 있어요. 제가 마음속에서 이해되는 정도까지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이해가 되고 그럴 만하겠다, 제가 납득 가는 정도까지만 연기했어요. 이해가 안 되면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그럼 감독님도 들어주시고 심리적이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겨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진=서보형 기자
오랫동안 가야금을 타고 국악계에 몸담아온 이하늬에게 ‘예인’으로서의 장녹수는 이해가 가는 대목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고, 장녹수의 심리와 감정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했기에 시청자들 역시 이하늬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이하늬는 장녹수의 삶과 감정이 자신의 안에 쌓이면서 점점 더 온전히 장녹수의 모습이 되어 갔다.

“저희가 거의 후반부에 나올 장면을 1회 때 복선처럼 찍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연산이 녹수에게 홍길동(윤균상 분)과 아는 사이였다지, 이렇게 묻는 장면인데 이하늬와 김지석은 만난 적도 없고 전사(前事), 후사((後事)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씬을 찍어야 하니까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씬을 찍고 시작해서 더 편해진 것도 있을 것 같고, 씬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아요. (…) 연산에 대한 마음이 어떤 걸까, 성공과 출세만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그게 다는 아닐 것 같아요. 길동에 대한 마음, 연산에 대한 마음이 정말 복합적이었어요. 단순하게 이 사람을 지금은 사랑하고 이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식의 감정들이 아니에요. 길동이 그리웠고 먹먹한데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연산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부분도 있으면서 사랑하고 네가 없으면 못살 것 같은데 있어도 못 살겠고.(웃음) 연산한테 나중에는 모성애 같은 느낌도 강하게 오더라고요. 내가 죽더라도 남겠다, 임금의 여자답게 죽겠다고 선택했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녹수가 되게 녹수답다고 생각했어요. 그 씬에서 끌려 나가면서 멀어져가는 연산을 보는데, 저는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두고 가는 어미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하늬는 극 중 장녹수를 사랑했던 두 남자, 길동과 연산으로 분했던 윤균상과 김지석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함께 호흡을 맞춰 좋은 작품을 완성한 동료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녹수가 죽기 바로 직전에 길동이가 구해주고 싶어서 온 씬이 있었는데, 멀리서 길동이 얼굴을 보고 너무 성숙한 얼굴이 되어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제가 길동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길동이 어른이 됐다고 했는데, 길동이의 성장사이기도 하지만 윤균상 배우의 성장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균상 씨는 제가 주는 만큼 온전히 되돌려주는 배우예요. 가만히 주면 가만히 받고, 가만히 주는 소프트한 배우예요. 지석 씨 같은 경우에는 엄청 섬세해요. 엄청 섬세하면서도 맹렬한 부분이 있어요. 옆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서 저런 맹렬함이 어디에서 나올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매력이 정말 달라요. 배우의 매력도 다르고 배역의 매력도 다르고. 호흡은 누가 더 좋고 나빴는지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남자 배우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또한 이하늬는 ‘역적’ 속 장녹수를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바라봐준 시청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표현한 장녹수에게 공감해준 이들이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뿌듯한 일이었다. 이하늬는 공화가 장녹수가 되기까지의 삶에 연민을 느꼈고, 그의 선택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굉장히 진취적인 여자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자기한테 ‘그 상황에 안주하고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상에 한 번쯤 도전해보고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들어왔을 때 능동적으로 해답을 찾으려 행동을 한 여성이라는 점이 대단하고, ‘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하늬는 자신이 표현한 장녹수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미숙, 박지영,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