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읽다](4) 수원 행궁동 - 이끼 끼면 낀 대로, 녹슬면 슨 대로 그냥 그대로, 사랑스러워

Posted by benant
2017. 5. 31. 08:39 카테고리 없음
ㆍ화성, 유네스코 유산 지정된 뒤 도시 개발 제한되고 인구 급감…‘있는 그대로’ 행궁동 받아들이니 새로운 문화공간 재탄생



수원의 옛 한옥을 개조해 만든 예술공간 ‘눈’의 창에서 바라본 풍경.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눈’은 전시실과 카페를 운영한다. 앞에 보이는 한옥은 카페로 운영된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조선시대 정조의 효심이 숨 쉬는 곳. 수원 화성은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면서 팔달산 아래인 현재의 위치로 관아를 옮기면서 축조한 세계적인 문화유적지다. 행궁동은 5.7㎞에 달하는 아름다운 성곽에 안겨 있는 정조가 세운 계획도시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맑은 물이 흐르는 수원천과 어우러져 자급자족을 꿈꾸던 이상향의 마을이다.



수원 북수동의 금보여인숙. 담장에는 브라질 작가의 황금 물고기 벽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지워졌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수원 화성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세계적인 역사유적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는 만큼 성 안에 사는 행궁동 사람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할 터. 수원시 오선화 학예사(44)는 “200년 전 정조가 만든 행궁동에는 북수동 등 12개 마을이 모여 있다”면서 “현실은 안타깝게도 행궁동에 사는 사람들에게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행궁동에 사는 사람들은 2000년 3만7000명에 가까웠지만 10년 사이 1만명 이상 감소했고 지금은 1만1000여명에 불과하다.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 도시 개발을 제한하고 행궁 복원 등으로 토박이들은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건물은 1970~1980년대 지어졌지만 재건축은 물론 신축도 어렵고 건물 규제도 심하다. 더 이상 살고 싶어도 살기 어려운 마을로 전락한 것이다.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동북각루)에서 내려다본 행궁동 일대. 1794년에 완공된 방화수류정은 군 지휘소와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녔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수원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성을 가진 행궁동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오래되고 쇠락한 골목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은다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마을을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삭막하던 콘크리트벽에 그림을 그리고 버려진 나뭇가지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행궁동이 변화의 물꼬를 튼 것은 10여년 전 대안공간 ‘눈’이 생기면서다. 옛 한옥에서 예술공간으로 바뀐 ‘눈’은 소담스럽고 어여뻤다. 조각가 이윤숙씨(57)는 “이끼가 끼면 낀 대로, 곰팡이가 생기면 생긴 대로, 녹이 슬면 녹슨 대로 오히려 허름한 벽을 드러내려고 애썼다”며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마당에 잔디를 깔고 자그마한 연못도 만들었다. 탐스러운 앵두와 장미꽃 화단을 만들었다. 모든 방을 전시실로 꾸몄는데 방 한가득 청동 작품이 있는가 하면, 강아지풀과 잡초로 만든 창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을 10개쯤 올라가면 다락방 도서관이 나왔다. 동화책과 만화책도 꽂혀 있었다.

새로 생긴 카페 겸 전시공간 ‘봄’은 50년 넘게 살던 2층 한옥을 예술공간으로 꾸며달라고 이웃이 내어준 삶의 터였다. 2층으로 올라가자 브라질 작가 라켈 셈부리의 작품이 유독 눈에 띄었다. 셈부리는 2010년과 2012년 행궁동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나 지난해 여름 출산 도중 사망했다. 셈부리는 서예를 배우기도 했는데 수원 화성의 서장대를 먹으로 표현한 작품은 그가 오랫동안 서예를 배운 것처럼 뛰어나다.

행궁동에선 예술활동이 활발하게 열린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신여성 나혜석을 기리는 전시회 등 다양한 전시가 열렸다.

“지금까지 13년간 700명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지역뿐 아니라 전국의 예술가와 외국인, 유학생까지 무료 전시회를 5~6개 동시에 열고 있습니다. 낙후된 행궁동을 역사와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골목, 빈 점포, 철거 예정 건물에 작가들이 힘을 보탰지요.”



수원 대안공간 ‘눈’에 걸려 있는 작품. 최미아씨의 작품 ‘카멜레온’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대안공간을 나와 낮은 담벼락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금보여인숙이 나왔다. 건축된 지 100년이 넘었다는 한옥이다. 이 여인숙의 담장에 셈부리가 황금 물고기를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물고기 벽화를 찾을 수 없다. 집값이 오르고 문화시설로 지정되자 집주인이 회색 페인트로 작품을 지웠다고 한다.

문구거리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30년 전만 해도 도매상이 40개나 됐지만 지금은 10여개만 남았다. 문구점 이환승 할아버지(72)는 인사를 건네자 연두색 수세미를 선물로 주었다. 반가운 이웃을 만나면 정성스럽게 뜨개질한 모자와 목도리 등을 준다고 하는데 옛날 캐러멜도 먹을 만큼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손사래를 쳤지만 문 앞까지 나와 등을 떼밀었다.

수원 화성 맞은편 ‘우주’는 최근 생긴 실험 문화공간이다. 130여㎡(40평) 규모의 문화공간에 250㎞ 길이의 비무장지대를 직접 걷고 느끼며 만든 미술, 조각, 설치, 서양화, 퍼포먼스, 사진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철책은 아픔이다. 분단을 넘으려면 고통을 걷어내야 아픔을 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공동 전시회이기에 의미가 남달라 보였다.

행궁동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또 다른 문화공간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골목 잡지 ‘사이다’는 행궁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5년째 발행하고 있는 지역공동체 매체. 담장이 없는 아담한 한옥으로 들어서자 20쪽이 넘는 골목 잡지 13권이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잡지를 펼쳐보니 42년째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이발을 해온 경수목욕탕 임영석씨(70), 40년 세월의 ‘모던의상실’ 황경순 원장(67) 인터뷰가 살갑다.

“항상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습니다. 친구 사이, 친한 사이, 노는 사이, 사랑하는 사이…. 여러분은 어떤 사이인가요?” ‘사이다’의 최서영 사장(54)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리를 찾으면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소소한 마을의 기록을 역사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공방거리를 둘러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수원 화성 옆 420m에 이르는 골목 가득 볼거리가 풍성했다. 수공예 가방, 가죽과 철사로 만든 공예품, 나무 서각, 압화점에 양복점, 세탁소, 이발소까지 30여개 상점마다 특이하고 이채로웠다. 1250도에서 구운 공깃돌은 5개 3000원이었고 칠보자기로 만든 브로치는 7000원이었다.

‘나무 아저씨’ 박영환 사장(57)과 함께 ‘이야기가 있는 옛길’로 들어서자 “잘 지내?”라고 쓰인 하얀 천이 바람에 화단에서 나풀거렸다. 마을 주민들이 가꾼다는 오밀조밀한 화단이 푸근했다. 200년 전 정조의 마음이 흐르는 것일까. 마을 주민들이 온 마음을 모아 수원 행궁동을 되살리고 있었다.

▶수원의 갈비는 언제나 옳고 순대 ...